까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세계 3대 가톨릭 성지순례 코스로 불리는 곳이다. 프랑스 길이 대표적이지만,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매우 다양하게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꾸르실료운동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꾸르실료운동의 시작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의 성지순례를 위한 봉사자 양성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던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야고보 사도는 당시 사람들이 세상 끝이라고 믿었던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야고보 사도는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는데, 그의 제자들이 야고보 사도의 유해를 스페인으로 옮기던 중 풍랑을 만나 유해가 사라졌다.
야고보 사도의 유해는 9세기에 들판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그곳에 세운 성당이 ‘성 야고보의 별이 빛나는 들판’이라는 뜻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다.
8세기 경, 아라비아반도와 북아프리카를 장악한 이슬람 세력으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대신 비교적 안전했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성지순례를 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있는 스페인 역시 남부 지방에는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는 스페인 북부 지방은 가톨릭 왕국(아스투리아스 등)이 지배하고 있어서 안전했기 때문이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경제적, 정치적 힘을 키울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스페인에서 이슬람세력을 몰아내는 국토회복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8세기 초부터 15세기 말까지의 약 770여 년 동안,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국토를 되찾기 위한 국토회복운동이 벌어졌다. 국토회복운동은 단순히 빼앗긴 국토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다시 가톨릭 국가를 세우기 위한 일종의 신앙회복운동이었다. 국토회복운동은 1496년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완성되었다.
국토회복운동을 성공했던 경험은 1930~40년대에 생겨난 신앙회복운동인 꾸르실료운동의 모태가 되었다.